인사이트 | 필로소피아

철학적 통찰 (Insights)

현상의 이면을 읽어내는 깊이 있는 시선들을 공유합니다.

Leadership2024. 05. 20

불확실성의 시대, 스토아학파에게 배우는 평정심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배경으로 카페 창가에 앉아 두꺼운 철학 책에 몰입한 현대인의 모습과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

우리는 매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과 마주합니다. 급변하는 시장 경제, 예고 없는 전염병, 타인의 평가 등 외부 세계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갑니다. 고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의 천막 안에서 『명상록』을 집필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너의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라.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너의 판단이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이분법(Dichotomy of Control)에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겪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대개 통제할 수 없는 영역(타인의 마음, 과거의 실수, 미래의 결과 등)을 통제하려 들 때 발생합니다.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스토아 철학은 수동적인 체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영역(자신의 태도, 현재의 노력, 윤리적 결정)에 에너지를 100% 집중하게 함으로써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게 하는 강력한 멘탈 트레이닝 도구입니다.

오늘날의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심(Ataraxia)입니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입니다. 필로소피아의 독서 모임에서는 에픽테토스와 세네카의 텍스트를 통해 이러한 내면의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을 지속합니다.

Ethics2024. 05. 12

AI 시대, 칸트의 정언명령은 유효한가?

인공지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윤리적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사고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전자를 보호해야 할까요, 다수의 보행자를 보호해야 할까요? 이러한 알고리즘의 설계는 결국 윤리적 가치관의 반영입니다. 이때 우리는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다시 소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칸트 윤리학의 정점인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은 결과나 상황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그 자체로 보편타당한 법칙에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 이는 AI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편향성이나 차별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ESG 경영이 화두가 된 지금, 단기적인 이익(가언명령)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가치와 윤리적 의무(정언명령)를 따르는 것이 결국 장기적인 생존 전략이 됩니다. 우리는 칸트의 텍스트를 읽으며 현대 기술 사회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토론합니다.

Self-Growth2024. 05. 01

니체, 자신을 극복하는 자의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의 철학은 종종 허무주의로 오해받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삶을 긍정했던 철학자입니다. 그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주체적인 인간상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니체는 이를 '낙타의 단계'라고 불렀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해야 한다(Thou shalt)'는 규율에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자의 단계('나는 원한다(I will)')를 거쳐, 마침내 어린아이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편견 없이 세상을 놀이처럼 즐기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독서 클럽은 당신이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 사자의 포효를 내지르고, 마침내 어린아이의 순수한 창조성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으며, 우리는 우리 안의 낡은 가치관을 파괴하고 새로운 나를 정립하는 축제를 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읽는 이유이자, 삶의 궁극적인 기쁨입니다.